Blog

단장의 아픔

세설신어 출면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진나라 환온이 촉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싣고 가는 도중에 양쯔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이곳은 쓰촨과 후베이의 경계로 중국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런데 그 어미 원숭이가 환온이 탄 배를 좇아 백여 리를 뒤따라오며 슬피 울었다.

그러다가 배가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 이를 즈음에 어미 원숭이가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 올랐다. 하지만 원숭이는 새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애를 태우며 달려왔기 때문에 배에 오르자마자 죽고 말았다.

배에 있던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끊은 것이다.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이 말을 전해들은 환온은 새끼 원숭이를 풀어주고, 그 원숭이를 잡아왔던 병사는 매질한 다음 내쫓아버렸다.

짐승의 마음이 이런데, 사람의 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죄의 노예가 되어 영원한 파멸로 가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마태복음 9:36은 이렇게 말씀한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은 그냥 마음이 아니다. 헬라어 어원의 뜻은 창자가 끊어지는 너무 아픈 마음이다. 주님은 이런 마음으로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생명을 쏟아 사랑하신 것이다.

아르헨티나 부흥

세계적인 중보기도자며 전도자인 [에드 실보소]는 아르헨티나의 영적 부흥을 위해 쓰임 받은 목사입니다.
그는 1976년 자기의 처남과 함께 중보기도 팀을 만들고 그의 고향인 [산 니콜라스]로부터 반경 160km를 기준으로 교회가 없는 109개의 도시와 마을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조사를 해본 결과 [메리길도]라는 강력한 마술사가 초자연적인 주술을 행하며 그 지역에 복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보소]목사는 중보기도 팀과 함께 전투적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지역을 둘러싸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메리길도]와 그의 추종자들을 묶고 있는 악령의 세력들을 물리쳤습니다. 그 결과 109개 지역 모두에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실보소] 목사는 [레지스텐시아]라는 한 도시의 복음화를 위해 3년간 영적 전투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990년 초 그 도시 전체 인구 40만명 중 1.5%만이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두 가지 악령의 정체를 밝혀 냈는데, 불화의 영과, 무관심의 영이었습니다. 그는 중보기도 팀을 그 지역으로 이동시켜서 1년 동안 집중적인 기도를 드리고, 지역을 위한 전도 집회와 지역 구석구석을 돌며 영적 싸움을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도시에 있는 교회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집회에서는 1,700여명의 사람들이 사탄 숭배와 마술을 위해 사용하던 물건을 하나님께 내놓아 불살랐으며 [레지스텐시아]의 시장도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한 해 동안 그 도시의 결신자가 두 배로 늘었으며 1990년 이후 아르헨티나는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용서

‘용서’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코리 텐 붐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용서의 예수 복음을 전했습니다.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했던 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뭰헨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마치고 사람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는 중에 한 사람을 보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라벤스부르크 수용소의 간수로 있던 나치 친위대 장교였습니다.
순간 수용소에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더러운 옷더미들, 발가벗김 당했을 때의 모욕과 수치심, 언니 베시의 죽음 …… 그러자 속에서 복수심이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자매님이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내 죄를 깨끗이 씻기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코리 텐 붐’은 도저히 그와 화해의 악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분노와 복수심과 증오 뿐 일말의 동정심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내면에서 들려왔습니다. “코리, 네 손을 내밀어라. 그러기만 하면 된다.” 결국 코리텐붐은 속으로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세요.”라고 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순간 수만 볼트의 강력한 전류가 그녀의 어깨와 팔을 통해 손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증오, 복수심, 분노는 녹아버렸고, 용서하는 사랑이 저항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밀려왔습니다. 그녀는 그 때 일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그는 어렸을 때 예수님을 믿고 주일학교에 열심히 나갔지만, 출세를 하고 돈을 벌면서 주님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카고 방송국의 연출자였으며 인기절정의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고 출세를 하였지만 마음은 허무했고 마음속의 불안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어렸을 때 믿었던 예수님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쩌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 후 어느 모임에 참석했다가 예수님께 자신의 전 삶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방송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다시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대우를 보장했지만 그는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미안하지만 전화를 너무 늦게 걸으셨습니다. 앞으로 나의 목소리와 재능 모든 것은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나의 주인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새로운 멜로디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늘 기도하신 어머니가 친구 밀러 여사에게서 가져왔던 성시에 맞춰 작곡을 시작합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 세상 자랑 다 버렸네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예수 밖에는 없네.”
그가 찬송가 94장을 작곡한 ‘죠지 베브리 쉐아’입니다.
(퍼온 글)

성경 말씀의 능력

남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타히티란 섬이 있다. 타히티는 프랑스의 영토이다. 오래 전 그 섬에서 반란이 일어나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반란은 진압되었고 폭도들은 법적인 절차에 의해 처형되거나 혹은 감옥살이를 했다. 1790년 9명의 불란서인과 6명의 타히티 원주민 남자들 그리고 12명의 타히티 여자 원주민들이 반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핏케인 섬으로 영구 유배되었다.
그들은 섬으로 들어가자마자 방탕한 생활을 했다. 양심도 없고 윤리 도덕도 없는 생활을 했다. 10년이 지나자 프랑스 남자 하나와 원주민 여자 몇 명 그리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어린 아이 몇 명만 남고 다 죽었다.
그런데 남자라고는 혼자 남은 프랑스인이 자기 옛날 짐을 챙기다가 낡은 성경을 한 권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그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810년에는 섬의 인구가 배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그 섬은 낙원으로 변했다. 도둑이 없고, 감옥이 없고, 위스키가 없는 섬이 되었다. 주민들은 부지런히 일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온 섬이 주일을 성수하게 되었다.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우연히 한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선교사는 그 원주민에게 행선지를 말하고 잃어버린 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원주민은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하고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따라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따라가던 선교사는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기진맥진하여 원주민을 붙잡고 “도대체 어디로 갑니까?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원주민이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길은 없습니다. 내가 바로 길입니다. 믿고 따라오시오.” 원주민을 따라 나선 지 한참 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때로 길이 보이지 않는 정글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방황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님이 길입니다. 길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면 인생의 참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아버지의 집,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추수감사절 유래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새 수장령을 공포하여 왕인 자신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감독들은 왕을 대신하여 교회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통일령’을 내려 교회의 예배, 기도, 의식들을 강제로 통일시켰습니다. 그것은 천주교 의식과 혼합된 것으로 경건한 개신교 성도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 때 청교도들은 정교 분리의 원칙을 주장하여 정부와 국교회로부터 투옥, 고문 등 심각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1600년대 중반까지 수많은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납니다.
1620년 9월 6일 많은 우여곡절 끝에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들을 태운 메이플라우어호가 미국 버지니아를 향해 떠납니다. 65일 간의 긴 향해 끝에 목적지 보다 훨씬 북쪽인 ‘케이프 카드 베이’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12월에 플리머스에 정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의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들짐승들의 위협으로 첫 겨울을 지나면서 절반가량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일 먼저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경건 생활을 했습니다.

첫 겨울이 지나자 그들은 원주민의 도움을 받으며 나무를 베고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해 10월 첫 수확을 마친 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도움을 주었던 원주민들을 초대하여 함께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현대 추수감사절 예배의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첫 번째 추수 감사 예배는 청교도들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 드렸던 감사의 예배였습니다. 이 감사가 오늘의 미국이 있게 했습니다. 이 감사가 미국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누리게 했습니다.

존 뉴튼의 거듭남

존 뉴튼은 당시 지중해를 오가는 상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나이 열한 살부터 선원이 되었다. 어렸을 때에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앙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선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성격도 거칠어지고 삐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난폭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오는 노예선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배 안에서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1748년 3월 1일 그는 배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그의 영혼 속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와 찬송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된 것이다. 그후 그는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의 정리하고 그가 대적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교회에서 27년간을 사역했다. 그런 중에 그가 회개한 지 29년 되는 1779년,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하여 미국 민요 Amziging Grace곡에 붙여 부르게 되었다. 이 찬송가에서 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방황하던 자신을 건져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퍼온 글)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는 이유

보통 종교개혁 하면 마틴 루터 한 사람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마틴 루터와 함께 동역했던 친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사에 등장하는 필립 멜랑흐톤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마틴 루터보다 열다섯 살 아래였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얼마나 친했느냐 하면 두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유언에 따라서 부부지간도 아닌데 비텐베르크 교회의 한 무덤 안에 묻힐 정도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일종의 행동주의자였다면 필립 멜랑흐톤은 이론적인 학자였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다가 종종 좌절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자기의 어린 후배였지만 친구였던 멜랑흐톤은 늘 “당신이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진리는 반드시 이길 것을 믿어야 하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쓸 때마다 말할 때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멜랑흐톤은 마틴 루터에게 성경 한 구절을 통해 그를 격려하였고 마틴 루터도 이 성경 구절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거듭난 성도들이라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놀라운 승리의 계획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쉽게 풀어쓴 로마서 이야기 / 이동원)

한 그루 바나나 나무가 됩시다!

똑같이 열대 기후에서 자라지만 전혀 다른 열매를 맺으므로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두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벤진’ 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바나나’ 나무입니다.
벤진 나무는 자라면서 옆으로 가지를 뻗고 그 뻗어난 가지가 다시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렇게 계속 뻗어가서 그 나무는 큰 거목이 됩니다. 어떤 경우 한 나무가 약 8킬로미터까지 뻗어 거대한 숲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나무가 뻗어 가면 그 밑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나무가 모든 양분을 다 빨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 나무가 고목이 되어 죽게 되면 그 자리는 황무지가 되고 맙니다. 벤진 나무는 자기의 큰 위용을 자랑합니다만 결국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주위를 황무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에 비해 바나나 나무는 주위에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바나나 나무는 육개월이 되면 반드시 옆에 한 새싹을 냅니다. 또 일년이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열매로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잎사귀는 사람들의 그릇이 되기도 하고, 지붕이 되어 비를 막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 나무가 죽으면 주위에 무수한 새 어린 바나나 나무가 자라나게 됩니다. 계속하여 더 큰 바나나 숲을 만들어 더 많은 열매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바나나 나무 같은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이 세상이 소망스러운 세상, 훈훈한 사랑이 넘치는 풍요로운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여기에 바나나 나무 중에 바나나 나무처럼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바나나 나무 같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 복음 12장 24절)
여기에서 한 알의 밀 알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죽음으로 더욱 세상을 풍요롭게 하시는, 정말 살맛나게 하시는 생명의 열매를 맺으신 예수님은 진정으로 한 알의 밀 알이요 한 그루의 바나나 나무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예고대로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따라 한 그루의 바나나 나무처럼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